제1장
강자연은 또 한 번의 소송에서 이기고 로펌 동료들과 바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술에 취한 그녀의 눈에 뜻밖에도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 앙숙이 들어왔다.
권도준. 국내외를 막론하고 유명한 대형 변호사이자, 법조계에서는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떤다는 살아있는 염라대왕. 법정에 선 이래로 단 한 번의 패소 기록도 없었다.
그 개자식.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그녀가 쫓아다니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무려 7년 동안이나 그를 쫓아다녔지만, 그는 여전히 그녀에게 차갑고 무정했다.
강자연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며 그 개자식에게 다가가더니, 그대로 그의 무릎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 손으로는 그의 넥타이를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의 허리를 휘감았다.
“권도준…… 너 혹시 안 서?”
소파 등받이에 기댄 남자는 그녀를 막지 않은 채, 차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이 없는 거 보니…… 진짜 안 서나 보네?” 그녀의 손에 슬그머니 힘이 더 들어갔다.
권도준의 두 눈에 이질적인 빛이 스치더니, 이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아 떼어냈다. 그의 차분한 목소리에는 희미한 잠김이 섞여 있었다.
“체면도 없어? 네 동료들 다 여기 있잖아.”
경쟁 관계에 있는 두 로펌의 동료들은 이미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있었다.
강 변호사…… 진짜 대단하다!
“내 체면은 너 때문에 진작에 태평양에 내다 버렸어. 이제 와서 무슨 체면!”
강자연은 잔뜩 취해 원망 섞인 말을 내뱉으며 그의 목을 세게 물었다.
고등학교 동창, 대학교 동기 중에 그녀가 이 망할 놈을 잡으려고 거금을 쏟아부었지만 머리카락 한 올 건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대학교 졸업 후, 그녀는 완전히 마음을 접고 외국으로 떠났다. 그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분야에서 그를 처참하게 짓밟아 주겠다고 맹세하며.
반년 전 다시 돌아왔을 때, 그녀 역시 국내외에 명성을 떨치는 무패 신화의 유명 변호사가 되어 있었다.
“으음…….”
권도준이 미간을 찌푸리며 큰 손으로 이 여자의 뒷목을 잡아 떼어냈다. 그의 눈빛은 깊고도 무언가를 억누르는 듯했다.
“강자연, 너 취했어. 동료들더러 데려다 달라고 해.”
“싫어. 네가 데려다줘!”
강자연은 그의 넥타이를 잡아 끌어당겼다. 명령조의 말투에는 애교가 살짝 섞여 있었다.
권도준은 그녀의 손을 떼어내고 넥타이를 살짝 풀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팔을 붙잡고 밖으로 나갔다.
남아있던 동료들의 눈이 더욱 휘둥그레졌다!
법조계에서 두 사람이 앙숙이라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오늘 밤 이건 대체……?
차 옆에 도착하자마자 강자연은 그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그녀의 손은 곧장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권도준의 등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가 그녀의 가는 허리를 붙잡아 밀어내며 살짝 높아진 톤으로 말했다. “강자연, 너 내가 성추행으로 고소해도 할 말 없는 거 알지?”
“진짜 못 쓰게 됐구나? 됐어,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나 붙잡고 해결해야겠다.”
강자연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지나가던 남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훈남, 모텔 갈래요?”
권도준이 굳은 얼굴로 그녀를 보더니, 그녀의 손을 눌러 내리고는 차 문을 확 열었다. 그는 조금도 부드럽지 않게 그녀를 차 안으로 던져 넣었다.
그리고 곧장 자신의 집으로 차를 몰았다.
두 사람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그녀의 흰 셔츠를 찢듯 벗기고 그녀는 그의 벨트를 풀며, 욕실로 들어갈 때까지 격렬하게 입을 맞췄다….
다음 날 아침.
막 잠에서 깨 눈을 뜬 강자연이 뻣뻣하게 고개를 돌렸다.
옆에는 두 손가락 사이에 담배를 낀 채 나른하게 앉아 있는 남자가 있었다.
깊은 눈매, 오뚝한 코, 완벽한 호선을 그리는 입술. 분명 매력 넘치는 얼굴이었지만, 숨 막힐 듯한 강렬함과 위압감이 느껴졌다.
머릿속이 순식간에 맑아졌다.
10년 만에, 어젯밤 그녀가 드디어 이 거물을 정복한 건가?
짜릿했다!
“좋은 아침, 권 변호사님.”
강자연은 이불을 붙잡고 몸을 일으키며, 평소 변호사로서 유지하던 진지하고 고상한 척하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씻어. 좀 이따 아침 배달 올 거야.” 권도준이 손에 든 담배를 옆 재떨이에 비벼 껐다.
“안 먹을래요. 오전에 의뢰인 만나야 해서.”
그녀는 사무적으로 말하고는 이불을 걷어 올렸다. 침대에서 내려오려던 그녀는 눈동자를 살짝 굴리더니, 문득 침대 협탁 위의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녀의 살짝 올라간 입가에 짓궂은 미소가 스쳤다.
“우리 사진 찍어서 기념으로 남길까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강자연은 재빨리 카메라를 켰다. 그의 단단한 가슴 근육에 머리를 기대고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휴대폰을 높이 들었다. ‘찰칵’ 소리와 함께 사진이 찍혔다.
옅은 회색의 얇은 이불 아래, 옷을 입지 않은 두 사람이 몸을 반쯤 가린 채 아슬아슬한 상상력을 자극했다.
그러고는 절친에게 사진을 전송한 뒤, 일부러 음성 메시지 버튼을 눌러 말했다.
[자기야, 나랑 내기했던 애들한테 빨리 돈 보내라고 해. 10년 치 이자 붙이는 거 잊지 말고.]
체면이 태평양까지 날아갔으니, 당연히 본전은 찾아야 했다.
권도준은 그녀의 말을 듣고 두 눈에 날카로운 빛을 번뜩이며 웃었다….
“내가 네 내기 상대였나?”
그녀는 몸을 돌려 남자의 탄탄한 근육질 몸에 착 달라붙었다. 한 손으로 그의 복근 위에서 동그라미를 그리며,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그를 희롱했다.
촉촉하게 빛나는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뭘 그렇게 놀라요?”
“아, 맞다. 어젯밤 일은 서로 원해서 한 거니까, 그냥 성인들의 게임이었다고 생각하죠. 책임질 필요 없어요.”
10년. 그녀는 수없이 좌절했고, 그에게 수없이 상처받았다. 머리에 총이라도 맞지 않은 이상, 계속 그에게 매달릴 이유가 없었다.
그와 자고, 그를 차버리는 것. 그것이 강자연이 줄곧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강 변호사님은 꽤나 화끈하게 노시네.” 권도준이 픽 웃으며 그녀를 곁눈질하더니, 휙 밀어냈다.
그의 이목구비는 숨 막히게 완벽해서, 쓱 쳐다보는 눈빛만으로도 강자연의 온몸이 짜릿하게 저려왔다.
이 개자식, 사람 홀리는 재주는 정말 알아줘야 한다니까!
그에게 밀쳐진 강자연은 재빨리 양손으로 침대를 짚었다. 몸이 뒤로 젖혀지며 반쯤 누운 자세가 되자, 칠흑 같은 긴 머리카락이 쏟아져 내렸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요염한 자태와 매혹적인 곡선이 극도로 관능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남자는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심장이 저도 모르게 한 박자 멈칫했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권 변호사님도 어젯밤엔 즐겼잖아요? 설마, 저를 좋아해서 잔 거예요?”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물으며 살짝 웨이브 진 긴 머리를 쓸어 넘겼다. 바닥에 떨어진 셔츠와 속옷을 집어 들어 태연하게 입기 시작했다.
느릿느릿한 동작 하나하나가 모두 의도적으로 그를 도발하고 있었다.
“내가 널 좋아한다고?” 권도준이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선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강자연은 그의 대답에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뭐, 상관없었다. 이번엔 자신이 그를 찬 거니까!
그때, 그녀의 휴대폰에서 ‘띠링띠링’ 하는 메시지 알림음이 연달아 울렸다. 집어 들어 보니, 절친이 보낸 연이은 메시지였다.
[너 진짜 권 변호사랑 잤어?]
[10년 동안 못 넘어오게 하더니, 어떻게 갑자기 성공한 거야?]
[빨리 말해봐, 테크닉 어땠어? 자세 공유 좀!] 뒤이어 음흉한 이모티콘이 붙어 있었다.
강자연은 재빨리 몇 글자로 답했다. [나중에 얘기해줄게.]
바로 그때, 권도준의 휴대폰도 ‘띠링띠링’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그가 휴대폰을 집어 들어 카카오톡을 열자, 고등학교 동창 단톡방과 대학교 동기 단톡방이 폭발하고 있었다.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강자연이 진짜 권 변호사랑 잤다고?]
강자연은 단톡방 메시지를 보고 살짝 굳었다. 이렇게까지 파장이 클 줄은 몰랐다.
다행히 두 단톡방 모두 가장 친한 사람들만 모여 있어 인원은 각 스무 명 남짓으로 많지 않았다.
그녀는 휴대폰을 들고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그냥 한번 자본 거야. 장난이었어. 나랑 내기한 사람들, 알아서 돈 보내.]
권도준은 그녀의 답장을 보고, 길게 찢어진 눈매를 살짝 휘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응시하는 호박색 눈동자는 극도의 한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강자연은 그를 한번 쳐다봤다. 등골이 갑자기 서늘해졌다….
[네가 권 변호사랑 두 번은 못 잔다에 건다. 이번엔 판돈 두 배.]
대학교 동기 단톡방 사람들이 전부 그 문장을 복사하며 미친 듯이 +1을 외쳤다!
[얘들아, 내가 두 번뿐만 아니라 세 번도 잘 수 있거든? 내기할 사람들은 돈이나 준비해 둬!]
강자연은 기세등등하게 답했다. 이런 식으로 체면이 깎이는 순간에 물러설 수는 없었다!
권도준은 그녀를 보며 눈가의 웃음을 더욱 짙게 했다. 그러나 그 웃음은 마치 사람을 산 채로 잡아먹을 듯 살벌했다!
그의 절친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권 변호사가 며칠 전에 변호사 하나 경찰서 보냈잖아. 20년 형! 강 변호사, 행운을 빌어.]
강자연은 그의 절친이 보낸 메시지를 보고, 침대에서 다시 담배를 피워 문 남자를 쳐다봤다. 그는 깊게 담배를 빨아들였고, 자욱한 연기 속에서 그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그녀는 눈썹을 으쓱하며 강하게 받아쳤다.
[그래요? 권 변호사님과 법정에서 만날 날이 기대되네요.]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더 이상 휴대폰을 보지 않고 침대 위의 남자를 향해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권 변호사님, 그럼 먼저 가볼게요. 어젯밤 수고 많으셨어요. 푹 쉬세요.”
권도준은 옅게 웃었다. 그의 두 손가락 사이에서 담배가 찌그러져 있었다.
